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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장충체육관. 장충단 공원 이야기

by news1781 2025. 2. 15.

장충체육관과 필리핀의 원조

서울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오면 곧바로 마주하는 장충체육관이 보인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2월에 개장했는데, 이 체육관 건립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필리핀으로 지원받았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6.25 전쟁으로 인해 매우 피폐한 경제 상태로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였고, 필리핀은 220달러로

우리나라의 3배에 가까웠다.

필리핀은 GDP가 584달러로 일본 다음으로 잘 살았는데, 우리나라는 78달러로 필리핀과의 격차가 컸다.

필리핀은 당시에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렸던 [막사이사이 상]이 유명했고, 건설기술과 경제적인 노하우를 배우려고 애쓰던 영향력이 큰 동경의 대상이었다.

장충체육관

장충체육관의 개관

1963년 2월 1일.

원래 노천 상태였던 장충체육관에 원형 지붕을 덮은 최초의 돔식 실내체육관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해서 테이프를 끊고 개관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냉. 난방시설이 설치된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초현대식 체육관이었고, 세종로 종합정부청사 맞은편에 있는 문화체육부와 미국 대사관 건물을 지을 때도 필리핀의 자금이 들어갔다.

장충단과 장충단 공원

장충단 공원은 1900년 9월 대한제국 고종 때 왜놈 낭인들이 경복궁을 침입해서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훈련대장 홍계훈, 영관 염도희, 이경호)과 열사(김홍제, 이학승, 이종구)와 궁내부 대신 이경직 등을 기리기 위한 '奬忠壇' 사당에서 유래되었다.

고종은 어영청 분소로 한양의 남쪽을 지키는 남소영(南小營) 자리에 장충단을 짓고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했다.

공원 입구에 있는 奬忠壇 글씨는 대한제국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썼고, 비석 뒷면에는 민영환의 글이새겨져 있다.

1969년 신라호텔 영빈관 내에 있던 장충단비를 장충단공원 수표교 옆으로 옮겼고, 1957년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수표교를 철거해서 으로 옮겼다.

 

장충단 공원 내 호국열사 비석들

 

장충단공원 일대에는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교계 대표들이 장문의 독립청원서를 바리강화회의에 보낸 <파리장서> 기념비가 있다.

또한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었다가 일제의 방해로 순국한 <이준 열사 > 동상이 있다.

 

장충단공원 내에는 약 1㎞ 길이의 산책로 숲 사이로 이한응 선생 기념비  등을 만나볼 수 있다.